저는 공무원을 그만두었습니다.

(2) 윗사람 지시만 처리하다 끝날 것 같은 불안감

이소하 2018. 8. 4. 22:37

공무원 조직은 그야말로 '윗사람의 지시'가 전부였다.


물론, 다른 사기업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나,


일단은 공무원의 입장에서 글을 적는 것이므로, 여기에만 범위를 국한시켜 이야기를 풀어가겠다.


다시 돌아와서


'윗사람의 지시'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내가 속한 기관장의 지시사항


(2) 내가 속한 기관보다 상위에 있는 기관에서의 지시사항이다.


상황과 일의 범위에 따라서 (1)과(2). 둘 중에 뭐가 더 힘든지는 그 때마다 다르다.


다만, 내가 답답했던 것은


결국 법과 원칙, 규정과 매뉴얼이 있더라도


그 모든 것들이 결국은 '기관장'과 '상위 기관'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어떻게든 빈틈과 예외사항을 찾아내서


그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나의 짧은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걸 잘 하는 사람들은 진급을 잘 했다.


그리고 많은 공무원들이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문제점은


결국 위와 같은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면


자신이 공적인 업무를 한다는 만족감을 느끼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래도 공무원이 일을 하는 것에 만족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 국가과 국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때라고 나는 믿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일이 결과적으로 기관장과 상급 기관이 원하는 대로 처리하는 것에 맞추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는 이 일을 30년씩이나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공무원 조직에서는 30년간 근무를 하면 30년 근속 훈장을 수여받는 데,


나는 인트라넷에 그 훈장을 수여받는 사진이 올라온 것을 봤을 때,


내가 저 사진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 분들이 잘못된 것은 절대 아니지만..


물론, 기관장과 상급 기관에서 지시하는 일의 방향이 공공의 목적에 부합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사실 대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공무원으로서 부정한 일에 내가 관여해야만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예를 들면, 어떠한 일에 대해 기관장과 상급 기관이 생각하는 일의 방향이 A이고,


나와 내가 속한 부서에서 생각하는 일의 방향이 B라면


그리고 A와 B 모두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가능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면


나는 B를 결코 주장조차 할 수 없었다.


실제로 주장을 해 보더라도, 그 건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과정과 절차가 매우 복잡할 뿐더러


공연히 일을 귀찮게 만든다는 핀잔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나도 위에서 지시하는 대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한다.


그걸 깨달았던 순간, 공무원을 오래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